빠르게 흘러가는 도시의 일상 속에서 문득 멈추고 싶었던 순간, 나는 전남 구례로 향했다. 섬진강의 잔잔한 흐름, 오일장에서 만난 따뜻한 사람들, 지리산 자락에 안긴 화엄사의 고요함은 마치 시간을 잠시 멈춘 듯한 경험을 선사했다. 이 글은 ‘느림’이 주는 위로와 평온함을 직접 체험한 여행기로, 바쁜 일상 속 쉼이 필요한 이들에게 작은 영감이 되기를 바란다.
섬진강을 따라 걷는 아침, 시간이 흐르지 않는 듯한 순간
구례에 도착한 첫날 아침, 나는 섬진강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강물은 말없이 흐르고 있었지만, 그 물소리에는 묘한 온기가 스며 있었다. 서울의 바쁜 일상 속에서는 시간은 늘 쫓는 대상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시간은 단지 존재할 뿐, 어떤 목적도 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해가 떠오르는 속도조차 느릴 정도로 평온했고, 사람들도 바쁘게 움직이지 않았다.
산책길 옆으로는 벚나무가 줄지어 서 있었고, 그 밑에는 하얗고 분홍빛 꽃잎들이 소복이 쌓여 있었다. 늦은 봄, 구례의 아침은 꽃잎으로 덮인 고요한 카펫 같았다. 그 길 위를 걷고 있노라면 마치 나 자신이 한 장면의 일부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노란 모자를 쓴 아주머니들이 강가에서 산나물을 캐는 모습도 인상 깊었다. 아무도 급하게 움직이지 않았고, 그저 ‘지금 여기’에 충실한 듯 보였다. 누군가는 자연 속에서 진정한 시간을 되찾는다고 했던가. 섬진강을 따라 걷는 동안, 나는 세상의 속도에서 한 발짝 물러난 기분이었다.
시간이 멈춘다는 건, 시계가 멈춘다는 뜻이 아니라 내 안의 조급함이 사라진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구례는 그 조급함을 내려놓기에 가장 좋은 장소였다.
오일장에서 만난 사람들, 느림 속에서 피어나는 삶의 온기
구례에는 오일장이 선다. 끝자리 숫자가 3과 8인 날이면 시장은 북적인다. 평소엔 조용하던 골목들이 장날이면 활기를 띠고, 시장은 마치 살아 있는 유기체처럼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나는 마침 장날에 맞춰 구례를 찾았고, 덕분에 진짜 ‘사람 냄새 나는’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오일장은 슈퍼마켓이나 대형마트와는 비교할 수 없는 특별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여기선 가격표보다 사람 간의 눈빛이 먼저 오간다. 할머니 한 분이 조심스럽게 내게 “이건 아침에 캔 거여”라며 나물을 건네줬다. 도시에서는 흔히 느끼기 힘든 정(情)이 이곳에는 자연스럽게 깃들어 있었다.
구례 오일장에서 나는 이름 모를 생선전 하나를 맛봤고, 누군가 손수 만든 머위쌈을 건네받았다. 생소했지만 정성스런 음식은 혀보다 마음을 먼저 움직였다.
시장통의 소란스러움 속에서도 어떤 ‘느림’이 존재했다. 사람들이 여유를 가지고 대화를 나누고, 물건을 고르고, 흥정을 하고, 때로는 앉아서 쉬어가는 풍경. 그 모든 것이 시간이 천천히 흘러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듯했다.
오일장은 단지 물건을 사고파는 장소가 아니었다. 이곳에서는 사람과 사람이 진심으로 마주한다. 느리게, 그리고 따뜻하게.
화엄사와 지리산 자락에서 찾은 내면의 고요
구례를 여행하며 가장 마음 깊이 남았던 장소는 단연 화엄사였다. 지리산 자락에 안긴 고즈넉한 절, 그 속에는 사람의 손이 닿았으되 자연을 해치지 않는 절묘한 조화가 있었다.화엄사에 도착했을 때 나는 말문이 막혔다. 오래된 전각들과 고목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마치 다른 시간대에 들어선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대웅전 앞에 앉아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바람이 나뭇잎을 살짝 흔들었고, 새소리가 머리 위로 지나갔다. 그 순간 내 안에서 어떤 생각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냥 그 자리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전부였다.
지리산은 거대했지만, 그 품은 부드러웠다. 말 없이 사람을 품어주는 어머니 같은 느낌이랄까. 화엄사 뒤편으로 난 산책길을 따라 걷다 보면, 나무 사이로 햇살이 떨어지고, 이끼 낀 돌계단이 조용히 내 발끝을 이끈다. 그 길을 걸으면서 나는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됐다. “지금 내가 원하는 삶의 속도는 얼마쯤일까?”
구례에서의 마지막 날, 화엄사 범종 소리를 들으며 나는 느꼈다. 느리게 산다는 건, 단순히 게으르게 시간을 보내는 게 아니라 ‘내가 진짜 원하는 방향’을 알아채는 것이라는 걸. 구례는 그런 깨달음을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전해주는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