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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인제 무인마을에서 조용한 며칠

by 다나튜터 2025. 4. 21.

복잡한 도시를 떠나 강원도 인제 깊은 산골, 사람의 흔적이 거의 없는 ‘무인마을’에서 조용한 며칠을 보냈다. 자연의 소리와 고요함 속에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느린 시간을 온전히 누리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이번 블로그 글에서는 그곳에서의 삶, 쉼, 그리고 치유의 시간을 전해본다.

사람보다 자연이 반겨주는 마을에 도착하다

강원 인제 무인마을에서 조용한 며칠
강원 인제 무인마을에서 조용한 며칠

도시의 소음과 인파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어느 날, 나는 강원도 인제 깊숙한 곳에 위치한 ‘무인마을’을 향해 떠났다. 이름 그대로, 사람의 손길이 드문 이 마을은 지도에서 찾기도 쉽지 않았다. 내비게이션이 안내를 멈추고, 좁은 시골길로 접어들 때부터 마치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작고 오래된 다리를 건너자, 눈앞에 펼쳐진 것은 고요하고 푸르른 숲, 그리고 낮은 구릉 사이에 자리한 몇 채의 집들뿐이었다. 사람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풍경은 낯설면서도 금세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마치 세상이 잠시 멈춘 듯한 정적 속에서, 새소리와 바람 소리만이 유일한 대화였다.

이 마을은 과거에는 몇 가구가 살았지만, 젊은이들이 떠나고 점차 자연에 돌려준 곳이라고 한다. 현재는 소수의 작가나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가끔씩 머무르는 임시 거주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나는 그중 하나인 작은 민가를 예약해 며칠 동안 머물기로 했다.

집 안은 단출했다. 벽난로와 작은 책상, 낡았지만 정겨운 나무 침대. 전기는 들어오지만, 인터넷은 되지 않았고 휴대전화 신호도 약했다. 처음에는 이 ‘단절’이 조금 불안했지만, 시간이 흐르자 오히려 그것이 이곳의 가장 큰 선물처럼 느껴졌다. 밖으로 나가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이름 모를 들꽃들이 길가에 피어 있고, 한참을 걸어도 사람을 마주치지 않았다. 사람 대신 자연이 나를 반기고, 바람이 인사를 건넨다. 그렇게 나는 조용한 며칠의 첫 페이지를 열었다.

 

느린 시간 속에서 다시 찾은 일상의 감각

무인마을에서의 생활은 그야말로 ‘느림의 미학’을 실현한 시간이었다. 아침 해가 마을을 밝히기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눈이 떠졌다. 알람도, 바쁜 약속도 없기에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조차 여유롭다. 부엌 한편에 마련된 작은 나무 화덕에 장작을 넣고 불을 지피며 하루를 시작했다. 물을 데워 커피를 내리고, 소박한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과정 하나하나가 마치 명상 같았다.

마을에서는 특별히 할 일이 없다. 아니, 굳이 뭔가를 해야 할 필요가 없다. 책 한 권을 들고 마당에 앉아 햇살을 받으며 읽거나, 근처 개울가를 따라 천천히 걷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꽉 찬다. 도시에서라면 단지 지나치는 순간일 수 있는 것들이, 이곳에서는 특별한 감각으로 다가온다. 새소리 하나,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 하나에도 귀를 기울이게 되고, 바람이 옷깃을 스치면 계절이 바뀌는 걸 느낀다.

하루는 작은 등산로를 따라 뒷산에 올라갔다. 정상이라기보다는 너른 언덕 정도의 높이였지만, 그 위에서 내려다본 마을은 마치 오래된 그림책 속 풍경 같았다. 하늘과 산, 숲이 하나로 이어지는 장면을 보며 나는 문득, 평소에 얼마나 바쁘게만 살았는지를 돌아보게 됐다. ‘쉬는 법’을 잊고 살았던 것이다.

저녁이 되면 해가 느릿하게 지고, 하늘은 붉게 물든다. 불빛 하나 없는 마을의 밤은 어둡지만, 동시에 별빛으로 가득 찬다. 서울 하늘에선 결코 볼 수 없던 별들이 쏟아져 내리고, 그 아래서 조용히 하루를 마무리한다. 느린 시간 속에서 일상의 감각을 되찾고, 내가 진짜로 ‘살아 있다’는 기분을 느꼈다.

 

고요함이 주는 치유, 다시 떠나기 전의 다짐

며칠을 머문 후, 어느덧 떠날 시간이 가까워졌다. 떠나기 전날 아침, 마을을 마지막으로 한 바퀴 돌았다. 들꽃은 여전히 피어 있었고, 바람은 어제와 같은 속도로 나뭇잎을 흔들고 있었다.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어 보이는데, 마음속은 뭔가 다르다. 고요한 마을에서 보낸 시간은, 말없이 나를 다독이고 정리해준 듯한 힘이 있었다.

무인마을에서 내가 얻은 가장 큰 선물은 ‘마음의 여백’이었다. 도시에선 끊임없이 채워야만 하는 삶을 살았다. 더 많은 정보, 더 많은 소통, 더 많은 계획. 하지만 이곳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충분했다. 오히려 비워야만 채울 수 있다는 걸 몸으로 깨달았다.

돌아가는 길목, 마을 입구에서 다시 뒤를 돌아봤다. 작고 오래된 집들, 멀리 보이는 숲, 그리고 나무 사이로 흩어지는 햇살. 그 모든 것이 내게 "언제든 돌아와도 좋다"고 말해주는 듯했다. 사람 없이도 존재감이 가득한 마을, 그곳의 침묵은 오히려 말보다 깊은 위로였다.

다시 바쁜 일상으로 돌아가더라도, 나는 이제 안다. 이 고요함을, 그리고 그 속에서 회복된 나를. 그리고 언젠가 마음이 또 지칠 때, 나는 다시 이 무인마을을 찾을 것이다. 그곳은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나를 조용히 맞아줄 것이다. 그렇게 나는 자연과 고요 속에서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다.